“산소-28 처음으로 관측해보니, ‘마법’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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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인식 기초과학연구원(IBS) 희귀 핵 연구단장은 지난 14일 열린 과학미디어아카데미에서 ‘지구에 없는 희귀한 원자핵 찾는다’를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사이언스타임즈 권예슬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희귀한 산소를 실험을 통해 만들어봤더니, 있지만 없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존재할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직 발견하지 못한 미지의 원소들을 하나씩 발견해나가는 것이 우리 핵물리학자들의 숙원 과제죠. 그 연구의 끝에는 우주의 기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이 있을 겁니다.”

지난 14일 서울역 회의실에서 열린 기초과학연구원(IBS)-한국과학기자협회 주최 과학미디어아카데미에서 한인식 IBS 희귀 핵 연구단장은 지구에 없는 희귀 핵(원자)을 찾아온 과학자들의 여정을 소개했다. 핵물리학자들은 빛에 가까운 속도로 입자를 가속시킬 수 있는 거대 실험 장치를 이용해 자연 상태에서 발견되지 않는 희귀한 원자를 찾는 연구를 계속해오고 있다.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쌍둥이 원소 탐색
수소, 헬륨, 리튬, 베릴륨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주기율표에 등재된 원소는 118개다. 이들 원소는 양성자 수가 같지만(원자번호가 같지만) 중성자 수가 달라 질량이 다른 ‘쌍둥이 원소’가 있다. 이를 동위원소라고 한다. 가령, 양성자가 1개(원자번호 1번)인 수소는 중성자가 0개다. 중성자가 1개면 중수소, 2개면 삼중수소로 불리며 이들이 수소의 동위원소다. 중수소나 삼중수소는 자연 상태에서도 발견되기 때문에 ‘안정동위원소’라 불린다.

▲ 이론적으로 예측하는 동위원소의 수는 1만여 개다. 이중 발견된 동위원소는 3000개 정도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중성자가 무한히 많이 결합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리적으로 중성자가 더해질 수 있는 ‘존재 한계선(드립라인)’이 있다. 존재 한계선을 고려하여 1만 개 정도의 동위원소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과학계에서 발견된 것은 118개의 원소와 3,000여 개의 동위원소뿐이다. 대부분 동위원소가 자연에 존재하지 않고, 인공적으로 만들어도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매우 희귀하고 수명이 짧다는 의미에서 이들은 ‘희귀동위원소’라 불린다.

동위원소가 존재할 수 있는 한계선은 어디인지를 규명하고 아직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미지의 70%의 동위원소를 찾아내는 것은 핵물리학 분야의 숙원 과제다. 2019년 출범한 IBS 희귀 핵 연구단은 벌써 이 분야에서 굵직한 성과를 꽤 냈다.

 

희귀한 산소-28 동위원소 첫 관측
원자는 양성자와 중성자의 비율에 따라 안정성이 달라진다. 양성자나 중성자의 수가 2, 8, 20, 28, 50, 82, 126 등 ‘마법수(magic number)’라 불리는 특정한 개수를 만족하면 원자는 더 안정적이다. (영화 <오펜하이머>에는 등장하지는 않지만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여성 과학자 마리아 메이어가 특별한 안정성을 보이는 마법수를 규명했고, 이 공로로 196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양성자와 중성자의 수가 모두 마법수에 해당하는 경우를 ‘이중 마법핵’이라고 하며, 더 큰 안정성을 드러낸다.

자연에 존재하는 산소는 대부분 산소-16(양성자 8개, 중성자 8개) 형태로 존재한다. 존재 한계선에서 규명하는 산소의 동위원소는 산소-8부터 산소-24까지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마법수를 고려했을 때 양성자 8개와 중성자 20개로 구성된 산소-28이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예상해왔다. 이중 마법핵의 특별한 안정성을 고려했을 때, 존재 한계 너머의 희귀동위원소가 있으리라는 기대를 건 것이다.

▲ 산소-28 관측 실험에 참가한 국제공동연구진의 모습. ⓒ기초과학연구원(IBS)

하지만 자연의 산소(산소-16)보다 중성자를 12개나 더 가지고 있는 산소-28은 실험적인 연구가 쉽지 않았다. IBS 희귀 핵 연구단이 포함된 국제 공동연구진은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의 중이온가속기 ‘RIBF’를 이용해 산소-28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실험을 진행했다. 산소-28 생성은 두 단계를 거친다. 칼슘-48 원소를 가속한 뒤 표적에 충돌시켜 플루오린-29 빔을 얻는다. 이후 플루오린-29를 다시 수소 표적에 충돌시키면 양성자 1개가 떨어져 나가며 산소-28이 생성된다.

실험 결과, 연구진은 세계 최초로 산소-28을 관찰했다. 하지만 산소-28은 단 10-21초 만에 사라졌다. 생성 직후 산소-24와 중성자 4개로 붕괴됐다. 연구진은 산소-28을 보긴 했지만, 산소-28은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중성자 수 20개의 마법수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중성자가 소실되어 버렸다.

공동 연구자로 참여한 황종원 IBS 희귀 핵 연구단 차세대연구리더(YSF)는 “안정적인 원자핵과 달리 극한 영역의 원자핵은 대부분의 성질이 미지로 남아있다”며 “산소-28과 같이 극도로 불안정한 원자핵의 실험 데이터는 보다 극한 환경에서 일어나는 원자 간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토대가 된다”고 설명했다. 연구결과는 지난 8월 30일 최고 권위의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실렸다.

 

이제 우리 가속기로 희귀한 핵 찾는다

▲ IBS 중이온가속기연구소의 모습. ⓒ기초과학연구원(IBS)

산소-28의 관측 외에도 희귀 핵 연구단은 4개의 중성자만으로 만들어진 ‘원자번호 0번 원소’를 발견하고, 소듐(나트륨)의 존재 한계선을 규명하는 등 굵직한 성과를 냈다.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는 일련의 연구에 이들이 빠져든 이유는 희귀한 동위원소가 우리가 사는 우주의 기원을 알려주는 열쇠기 때문이다.

일례로, 인류는 아직 철보다 무거운 원소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모른다. 초신성 폭발 등의 유력한 가설이 있지만, 아직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다. 불안정한 희귀동위원소는 원소의 합성 과정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이 성질을 실험적으로 밝혀내면 다양한 무거운 원소들과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기원이 무엇인지를 알아낼 수 있다.

지금까지 희귀 핵 관련 연구는 해외의 가속기를 활용해왔다. 국내에는 희귀동위원소를 연구할 정도로 높은 에너지까지 가속할 수 있는 시설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단계 구축을 마친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라온(RAON)’ 덕분에 머지않은 미래에는 우리 가속기로 관련 연구를 진행할 수 있게 된다.

안득순 IBS 희귀 핵 연구단 그룹리더는 “희귀 핵 연구를 위해서는 아직 구축되지 않은 라온의 고에너지 가속기간이 필요하다”며 “우리 연구단은 라온의 중이온 빔이 원하는 지점까지 도달했을 때, 곧바로 실험을 수행할 수 있도록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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